#2-1. 2020.05.13
https://www.youtube.com/watch?v=YuPEmhhNEPQ&list=PLH8-YqlfhPlnNuVULQxcDsOhPLxlsHQ3B&index=1
1.
인류의 역사는 종종 새로운 도구의 등장과 함께 큰 전환기를 맞았다. 불, 금속, 문자, 종교, 인쇄기, 증기기관, 공장, 컴퓨터와 스마트폰. 도구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지만 인간은 도구에 의해 새로운 정체성을 가진다. 새로운 정체성을 가진 인간은 더 새로운 도구를 만들어내고, 이런 일들의 반복이 누적되어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의 사회가 형성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현대 사회에 불만이 좀 많은 사람이었다.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퇴화를 촉진하고, 자본주의와 산업화로 가속화된 현대 사회는 빠르다 못해 폭주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도구’에 목적을 두고 살아간다고 믿었었다. 아마 기숙사에 갇혀 컴퓨터조차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3년을 보내면서 사회에 쌓인 불만과 무지가 생각에 약간의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사실 지금도 저 생각에 부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다만 한 가지 달라진 것이라면,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라고 막연한 희망을 품게 되었다는 점이다. 적어도 이것이 나만 인식하는 문제가 아니며, 전쟁이 나서 지구가 초기화 되지 않더라도 어딘가에 해답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왕이면 안된다고 미리 단정짓기보단 될 거라고 믿으면서 살고 싶다.
그렇다고 해도, 사회의 대부분은 경제나 정치나 산업 같은 친구들과 복잡하게 매여 있으니, 부분적으로 손을 댄다고 한순간에 모든 것들이 ‘짜잔’하고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일어날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대중의 참여가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며, 기술이 보편화 된 현 시점에서 그것들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판별하는 사람이 등장해서 인간에 대해 성찰하고 앞으로의 행보를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2.
요즘 나는 넷플릭스나 유튜브나 멜론 같은 서비스를 떠올리면 생각이 복잡해진다. 세 달 정도 전부터 그것들에 손을 대기 시작했는데, 사용하다 보니 왠지 문명인이 되어 가는 것 같아 뿌듯한 한편 자동 추천 알고리즘이 너무 마음에 안 들어서 힘들다. 처음 서비스에 등록할 때 취향을 고르래서 골랐더니 그 취향대로 내게 새로운 컨텐츠를 추천해줬다. 내가 그들이 추천해 준 컨텐츠를 보면 그들은 그걸 다시 내 취향으로 반영하고, 다시 똑같은 느낌의 컨텐츠를 추천해주는 되먹임 고리에 갇혀 있다. 지루하다.
그렇지만 자동 추천 알고리즘이 없어도 참 막막한 것이, 내가 살고 있는 시대는 흥미로운 컨텐츠와 그것들을 담아낼 기기들이 넘쳐흐르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너무 많다. 그냥 많은 것도 아니고, 퀄리티가 좋은 영상들이 너무 많다. 영상은 점점 많아지는데 내 시간은 많아지지 않으니 별 수 없이 선택을 해야 하고, 좋은 선택을 위해서는 내가 좋아할 영상을 골라야 하는데 내가 좋아할 영상을 고르는 것이 아주 어려워졌다. 구글에 ‘고양이’ 라고 검색하면 116,000,000개의 검색 결과가 나오는데, 그것들 중 내 마음에 쏙 드는 결과를 내가 일일히 찾고 있을 수는 없지 않는가.
어쩌면 인공지능의 등장도 불가피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가 세상에 사유재산과 자본주의라는 제도를 꺼내 놓았을 때부터 모든 일들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사회는 점차 집단보다는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기 시작했고, 더 많은 돈을 위해 효율을 좇았을 것이다. 기계와 공장으로 둘러싸인 산업화 시대를 지나고, 고민보다 해결이 쉬워진 정보화 사회에 도착했다. 분열된 사회와 정보화의 만남은 다양성의 늪을 만들고, 그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해 인공지능이라는 배를 띄웠겠지. 문제는 그 배가 방향 조절이 안된다는 것이고.
라고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3.
영상에서 언급된 기억에 관한 이야기가 인상깊었다. 창의IT융합공학과 면접을 보러 왔을 때, 인공지능과 관련된 문제에 대답하면서 새로운 기술에 의해 우리가 무언가를 기억할 필요가 없어진다면 인간이 가지고 있던 능력들이 점차 퇴화할 것이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는 예시로 길을 기억하는 능력과 전화번호를 외우는 능력의 퇴화를 문제의 예시로 들었었다.
그런데 요즘은, 그 퇴화가 정말 문제일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있다. 아주 오래 전, 우리 조상들은 나뭇가지와 나무판만 있으면, 혹은 돌멩이 두 개와 지푸라기만 있으면 불을 피울 수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니지 않은가. 라이터나 성냥만 있으면, 가스레인지 레버만 돌리면 간편하게 끝날 일을 구태여 나무끼리 비볐을 때 생기는 마찰열을 모아서 힘들게 불을 지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불 피우는 일을 잊는 것은 당연하지만 전화번호 외우는 방법을 잊는 것은 문제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둘은 본질적으로 같은 전개양상을 가지기 때문이다. 인간이 새로운 도구의 등장과 함께 한계를 극복하고, 그와 동시에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것은 역사 속에서 되풀이 되어왔다.
그렇지만, 그 망각들이 축적되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다.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 낸 사회에 의해 정의되는 존재가 아니었던가. 언젠가 인류의 대다수가 모든 것을 망각하고 도구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날이 온다면, 그리고 최상위에 있는 사람들 만이 사고와 테크네를 이어가며 살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이것이 정말 극단적이기만 한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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