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20.03.25

* 이 태그는 인문과학기술융합개론 수업을 정리하는 용도로 사용할 예정입니다.

과제 내용: 유발 하라리의 '호모데우스' 중 인류세 부분을 읽고 토론하기.

*
*매머드의 멸종같은 커다란 변화는 대체로 많은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할 만큼 천천히 진행된다. 대부분의 상식적인 경우에, 우리는 어떤 문제가 발생할 것을 명확히 알면서도 행동을 반복하지는 않는다. 유발 하라리가 언급한 것처럼 우리의 행보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많은 것들이 변화한다. 기후, 여러 종류의 혐오와 사회적 갈등, 점점 더 빨라지는 사회 등.
*컴퓨터나 인공지능은 도구일 뿐이다. 저자가 그것들에 인격을 부여해서 신격화하는 대목은 잘 이해되지 않는다.
*어쩌면 신본주의는 인본주위의 초기모델일지도 모른다. 인간이 자연환경에서 다른 생물보다 더 특별하다는 것을 서로에게 납득시키기 위한 도구였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종교가 가지고 있는 고차원적인 정신세계와 의미는 개인의 건강한 삶과 긍정적인 사회를 유지하는데에 굉장히 중요하다.
*논외로 자기 집 잔디밭에서 바비큐를 먹으며 축일을 기념하는 현대의 가정이 성경 정신에 더 가깝다는 저자의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바베큐를 사다가 마당에서 구워먹는 것이 식탁 옆에서 염소를 잡는것보단 우아해 보이지만, 그것은 삶의 본질이 달라졌기 때문이 아닌, 사회의 분업화에 기인한 변화이기 때문이다.


+. 약간의 생각

나는 기술의 지나친 발전이 사회를 오히려 병들게 하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삶을 편리하게 만들기 위해서 이런저런 기술이 도입되는 것이 종종 더 중요한 의미나 가치를 잊어버리도록 유도한다고 느껴왔다. 그렇지만 이런 주장을 펼칠 때는 종종 자기모순에 빠졌었는데, 최근에야 그 이유가 추상적인 주장과 근거의 두루뭉술함에 있었기 때문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저자인 유발 하라리와 이견도 많지만, 호모데우스를 읽으면서 앞으로 어떤 공부를 더 해야할지 약간의 힌트를 받은 느낌이다.


그래서 조금 더 깊게 생각해 봤다. 나는 아직 문명사를 잘 모르고 이건 그저 거칠게 써본 생각이니, 혹시 지적할 부분이 있다면 누구든 언급해주기를 바란다.

인류는 수렵과 채집 생활의 종료와 함께 다른 운명을 선택했다.
주어지는 것만 누리는 것이 아닌, 필요에 의해 무언가를 창조해 낸 그때부터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자연이 아닌 우리의 손에 맡기자고 약속했다.

사람 계열의 동물만 그러는 것도 아니다. 새, 개미, 비버 등 수많은 동물들도 집을 지으며 살아간다. 그들이 만드는 둥지도 보호와 저장이라는 일종의 목적을 위한 도구이며 그들이 선택한 운명이다.

우리는 다른 종족이 도구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방해하지 않았고, 그들이 만든 도구를 빼앗지도 않았다. 단지 우리 종족은 그들보다 욕심과 호기심이 많았고, 그 욕심과 호기심을 충족할 능력을 계속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이걸 자연선택이라 불러야 할지 인공선택이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아주 오랜 시간동안 세상을 천천히 변화시켜온 인류는 몇백년 전부터 더 급격한 발전기를 맞는다. 만든 도구를 이용해서 새로운 도구를 만드는 방법과 새로운 도구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도구를 만드는 방법을 익히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말하는 도구는 실체가 있는 대상뿐 아니라 지식이나 생각 등 실체가 없는 대상도 포함한다. 그들도 결국 호기심이나 궁금증 해소와 같이 어떠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공학과 과학 분야에서 많은 성취가 있었다. 우리의 본성 중 하나인 ‘만물에 대한 호기심’이 축적해 놓은 지식을 새로운 기계를 만드는 데에 사용할 수 있었다. 반대로, 새로운 발명을 위해 필요한 지식을 연구해서 찾아낸 사례도 있었다.

이처럼 인간과 도구의 1차 교류에서 벗어나 도구와 도구의 교류로 이어진 발전은 점점 더 가지를 뻗어 나갔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도구가 점점 더 중요한 존재가 되고 어쩌면 사람보다 그렇게 파생된 도구들에 더 집중된 사회가 만들어져 주객이 전도된듯한 느낌을 종종 받는다. 그리고 그것이 아마 내가 느끼고 있는 문제들이 아닐까 싶다.

보통 새로운 도구를 만드는 사람들은 도구를 만드는 목적을 이루는 것에 집중하기 때문에 그로 인해 생길 크고작은 문제들을 미리 보기 어렵다는 것. 그리고 도구에 매료되기 시작한 우리 종족이 우리와 같은 차원에 존재하는 자연과 다른 생물체에 대한 존엄을 잊어버리게 되었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포스트 휴먼이 어떠한 관점으로 도구들을 바라보고 대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 오늘은 여기까지 생각해 봤다.

그렇지만 아직 ‘그래서 현대에 어떤 문제들이 있는데?’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생각이 잘 정리되지 않았다. 보태줄 의견이 있다면 답글을 부탁한다!

*

3월 23일에 이런 과제를 제출한 후, 오늘은 같은 주제에 대해 다같이 이야기하는 수업이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진짜 너무 재미있었다. 이 주제를 가지고 멋진 친구들(!!!)과 같이 토론할 수 있게 되어 정말 기쁘다. 혼자 고민하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수업이 끝난지 이제 10분정도 지났는데 벌써 다음주가 기다려진다. 진심으로.

오늘 나의 결론을 요약하자면

1. 왜 인간이 지구를 지배하게 되었는지 생각할 때, 우리는 이성(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다른 동물과 차별화되는 판단능력)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 없다. 동물의 입장이 되어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렇기 때문에 섣부르게 특정 능력이 인간만의 것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2. 나는 우리가 최상위를 선점한 이유를 두가지로 나누어 생각한다.
  1. 인간은 다른 동물들에 비해 호기심과 욕구의 종류가 다양하고 그에 대한 집착이 더 강하다. 종류가 다양하다는 말은 좀 위험하지만, 결과적으로 봤을 때 우리가 이루어 낸 문명은 단순히 먹고, 자고, 살아가는 생존적인 목적을 훨씬 능가한다. 우리는 미지의 영역에 도달하려는 강한 욕구를 가진다. 고대 철학자들이 말했던 '이성'은 이런 특성들을 설명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2.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인간은 도구를 만들고 활용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이때의 '도구'는 실체를 가진 물건으로서의 정의를 넘어, 특정한 목적과 욕구를 가지고 만들어진 의사소통, 기록, 고민, 생각, 학문 등의 모든 추상적인 개념을 포함한다. 물론 다른 종족도 도구를 만들고 사용할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여러 도구를 연관짓는 방식은 그들과 확연한 차이점을 만든다. 
    1.  나는 이를 단계로 나누어 설명하고자 한다. 무생물인 자연환경(세상의 모든 분자와 원자, 전자, 양성자들을 포함한다)은 0단계, 모든 생물체는 1단계에 위치한다고 생각해보자. 0단계와 1단계의 이들은 모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대상이다.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발생한 것이 아닌, 아무도 모를 어떤 이유로 존재하게 된 이들이다. 그렇지만 1단계의 대상은 목적과 욕구와 의지를 가진 생명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2. 1단계에 속하는 대상들은 필요에 의해 여러 종류의 도구를 만든다. 
      1. 새는 나뭇가지를 주워다가 집을 짓는다.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노래도 부르고, 구애의 춤을 춰서 상대방을 유혹할 줄도 안다.
      2. 개미는 먹이를 먹고 체내에서 합성한 페로몬을 방출한다. 길과 먹이에 대한 정보를 다른 개미들에게 전달하는 도구이다.
      3. 어떤 유인원들은 단단한 껍질을 까기 위해 돌로 열매를 빻기도 한다.
      4. 원시의 사람은 나무로 불을 붙일 줄 안다. 돌멩이로 벽에 무언가를 그릴 줄도 안다. 가죽이나 기다란 덩쿨을 사용해서 줄이라는 도구를 만들 줄도 안다.
    3. 이 도구들이 2단계이다. 물론 수도 없이 많지만 예시만 간단하게 들어봤다. 여기서도 우리는 독특한 특징을 지니는데, 우리는 같은 1단계에 속하는 대상을 이용해 도구를 만들 줄 안다. 토끼 가죽으로 끈을 만들거나 물고기의 뼈로 바늘을 만들 줄 안다. 곰도 물고기를 먹지만 그들은 다 먹은 뼈로 이를 쑤시거나 바늘을 만들지는 않는다.
    4. 더 나아가서, 3단계의 도구를 만들기도 한다. 동물들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분명 2단계의 도구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드는 생명체가 있긴 할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만큼 잘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감히 예상해본다. 우리는 자연선택을 통해 신체 능력 대신 도구 제작에 강력하게 특화된 지능과 신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줄로 가죽을 엮어서 옷을 만들고, 날카롭게 간 돌칼에 손잡이를 묶어 도끼를 만들고, 줄을 줄끼리 엮어 그물을 만든다. 
    5. 이 다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다들 짐작하리라 믿는다. 여기에 추상적인 도구의 활용이 더해지면서 인간은 점점 더 차별적인 존재로 성장했다. 서로의 도구를 보고 자기의 도구를 개선하는 '모방'이라는 이름의 도구. 더 나은 도구를 위해 의견을 나누는 '공유'라는 이름의 도구. 서로의 도구를 빼앗기 위한 '싸움'이라는 이름의 도구 등등 실체적 도구와 추상적 도구가 상호작용을 하면서 새로운 욕구와 목적이 등장하고, 그에 따라 문자와 공동체라는 도구도 생겨난다.(Q. 가족은 어떻게 설명하지..?)
    6. 뿐만 아니라, 우리는 도구를 만들기 위해 뒷받침이 될 도구를 만드는 방법도 알고 있다. 토기를 만들기 위해 불로 구울 수 있는 가마를 만들고, 청동검을 만들기 위해 거푸집을 만든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상상한 것들을 실체화하는 능력을 얻고, 문자라는 도구를 통해 후대에 전달한다. 
    7. 이것이 문명이 형성되는 기본적인 원리이다. 현대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많은 단계들이 있었겠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의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 온 단계의 도구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원으로 돌아갔을 때 우리가 속해야 하는 곳은 0단계와 1단계이지만 지금은 그보다 한참 뒤의 어느 곳에서 우리만의 세계를 만들고 있고, 그러니 지구의 근본인 0단계와 1단계는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 내 가설이다. 

3. 그렇지만 이렇게 설명할 수 없는 내용들이 한참 더 있다. 정신적인 영역이다. 나는 우리의 감정과 벅차오름과 가족애와 모성애와 유대감 같은 것들을 진화의 과정에서 생긴 도구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앞으로 더 고민해 보아야 할 부분이다. 가설의 전제인 다양한 욕구의 근원도 아직 잘 모르겠다.

4.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대에 맞게 살아가는 것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줄타기를 하는것처럼 불안불안하다. 더 공부하고 고민해서 중간 어디의 안정점을 찾게 된다면 그곳이 바로 우리의 미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믿는다.

생각의 큰 흐름은 아직 변하지 않았다. 그동안은 생각이 정착하지 못해서 힘들었는데 이제 좀 다져진 느낌이다. 다행이다. 인기융 수업에서 더 많이 듣고 생각하고 이야기해보고 싶다.  

다음 수업에서는 다같이 과잠을 입고 있는 상황을 내심 기대해본다ㅎㅎㅎㅎㅎㅎㅎ.


댓글

가장 많이 본 글